드라이빙 레슨 (Driving Lessons) 영화


요즘은 어디서나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 하나의 통과 의례로 되고 있다. 그냥 우연히 (사실은 웃으려고 일부러 찾은) 영화는 오늘, 즉 2011년의 성년의 날(물론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월요일이었지만)과 일맥상통한다. 집에서 억압을 받으며 자라는 한 소년이 운전을 배우는 과정에서 더 큰 것을 배운다는 의미다. 정확히는 운전 강습이 아니라 인생 강습이다. 그리고 단순히 차뿐만 아니라 인생을 운전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한 마을에서 교회에 너무 열성적인 엄마 밑에서 자란, 시를 좋아하는 소년 벤(루퍼트 그린트)은 어느날 어떤 할머니(?)의 집에 일을 하러 가게 된다. 그 늙은 여인은 이제 은퇴한 노배우로 성격이 조금 괴팍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만 하는 듯 하다가도 자신의 삶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짜증이 나다가도, 그녀에 의해 강제적으로 운전을 해서 캠핑을 떠나는 벤이 마침내 자신의 삶을 깨고 나오는 법을 배운다는 내용이다.

아무래도 올해 초반에 읽었던 책이 '데미안'이어서 그런걸까, 사람이 자라나거나 성장을 하려면 '무언가를 깨야'한다는 것이 많이 느껴진다. 하나의 벽을 깨고, 그 울타리를 넘어서면서 사람은 성장한다고 믿는 걸까. 적어도 다른 세계를 보게 되면 더 넓은 세상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시야가 넓어지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나도 나이만 이렇게 많이 먹었지, 그렇게 틀을 깬 적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아직 그 알 속에 갇혀있는 지도 모른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썩을 것이고, 이 틀을 깨면 날아오를 수 있겠지.


로라 린니는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배우인데, 항상 무언가를 강요하는 모습으로 많이 나와서 아쉽다. 뭔가 쓸쓸한 그런 역할도 잘 어울리는데. 물론 루퍼트 그린트도 너무너무 귀엽고(하지만 뭔가, '론'의 이미지를 지우기는 힘들다), 줄리 월터스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영화의 연기적인 중심축은 아무래도 줄리 월터스이지만, 왠지 소년과 할머니(?!)의 첫 만남은, 해리포터에서 엄브릿지 교수와의 만남을 연상시킨다고 할까. 내가 좀 더 어렸으면 좀 더 재밌게 봤을 텐데.

소스코드 (Source Code) 영화



소스코드는 지금까지 보아온 무수한 스릴러물의 전형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흔히 말하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는 점 정도다. 솔직히 그 아이디어도 이미 여러번 반복된 '시공간을 넘어서'라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 아마 '콘택트(Contact)'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감명깊게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이게 뭐냐'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게 될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시공간을 초월하려고 하지만 한계에 부딪히는 점은 (뭐 이 점에서는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콘택트'와 비슷하고,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바꿀 수 없는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나비효과를 넘을 수 없다. 다만 그게 의식이며, 지나간 과거인 소스코드라는 점은 다르다. (이걸 모르고 영화를 보면 그래도 앞 부분은 재밌다)


게다가 가족에 대한 속죄의 이야기도 엉성하게 얽혀있는데 대체 뭘 말하려는 건지 마구 던져놓고 긴밀하게 연결은 못시킨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결말은 헐리웃 전형의 방식으로 영화 전체를 망쳐놓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를 제일 망친건, 짧은 8분이 여러번 반복되면서, 자신의 앞에서 자신을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미로) 무진장 지지해주는 한 여자에 대한 감정이다.

사람마다 영화를 보는 관점에 따라 평이 많이 달라질 수 있는 영화이다. 오락용으로는 좋은 영화지만, 그 이상으로는 '글쎄'라는 결론이 난다. 아마 시나리오를 쓸때 조금만 더 치밀하게 구성하려고 했다면 이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을 소재라고는 생각한다. 제이크 질렌할과 미셸 모나한의 만남이 나이대 비슷한 청춘남녀로 나오는 게 가장 큰 쇼크였다면 쇼크다. (미셸 모나한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외모에 비해서 상당히 나이든 이미지다. 아마 지금까지 맡아온 역할들때문이 아닐까)


억울하다 숨쉬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는 여전히 그냥 기다리는 마음과 이제는 안된다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이 마음이 교차하는 지점에서는, 고기압과 저기압이 만나듯이 비가 내린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아주 솔직한 이야기로 이런 내가 너무 싫고 죽고싶다.

문제는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이 갑자기 고장이 나서 문자를 아무것도 못 받는다. 이틀간 문자가 여덟개가 왔다. 그 중에 하나는 그가 보낸 게 아닐까, 드디어 후회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볼 수 없었다. 요즘에도 이렇다, 아직은. 골목을 돌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몇개 읽어보니 이것도 잠시 지나가는 감정일 수 있겠다. 그냥 그럴리 없다는 걸 안다. 어떤 사람들은 몇달 뒤에도 돌아온다고 한다. 차라리 그럴바에는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다쳤을때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는 절대 오지 않을 사람이다. 어쨌든 옛날 핸드폰으로 잠시 교체하기 위해서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그런데 그가 예전에 만들어주었던 케이크 사진이 메인 화면이었다. 통화기록에는 온통 그 번호였다. 문자함에도 가득했고, 사진함에는 함께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며칠동안 잘 쌓아왔던 것들이 한번에 무너졌다. 핸드폰을 찾으면서 그가 써주었던 편지를 또 발견했다. 여전히 가증스러워보였지만, 또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나와 결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헤어진다고 했다. 어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결혼 부적격자인가 싶어서 화가 났다. 아무리 그래도 헤어진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말 바보같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었다. 만약 내가 결혼하는 걸 꿈꿨다면, 그와 헤어지지 않고 쭉 함께 있고 싶어서였을 거다. 그런데 그는 그냥.. 3년 반이 넘는 시간동안 그가 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이 한마디에 무너져내렸다. 그는 나한테 너무 이상적인 사랑을 바란다고 했지만, 천만에. 난 그에게 많은 것을 맞추었다. 처음 했던 약속들이 무너질 때도 나는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저 차이는, 나는 그를 좋아하고 그는 그렇지 않다는 것에 있을 뿐인데, 그런데, 그는 다르게 말한다. 화가 난다. 단순히 자기 마음이 변했는데 이런 변명을 만들어 놓고, 그것도 둘 다 아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닌다니. 한편으로는 정말 화가 난다. 헤어질 때 안 좋은 뒷모습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그가 좋아지지는 않는다.

한편으로는 그가 다시 돌아와도 안 될 거라는 것은 나도 안다. 내가 그의 신뢰를 잃었듯이, 나는 지금 너무 상처를 입었다. 지금은 그래도 그 상처를 아물 수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 믿고 있다. 이걸 혼자 다 아물게 되면 다시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다. 물론 따끔거리기는 할 거다. 그가 새로운 사람과 너무 잘 지내는 걸 보게 되면 난 너무 화가 날 거다. 내 상처 역시 다른 사람을 만나면 빨리 아물거라는 걸 안다. 아무나 만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거고, 그리고 그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걸 배웠으니까.

나는 정말 너무 아프다. 이대로 아파서 차라리 아무 생각이 안났으면 좋겠다. 신이 있다면, 더 많이 아픈 사람이 더 빨리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더 아파도,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예전에는 나도 꽤 쓸만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정말 자살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를 만나면서 누군가 나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준다는 사실이 그런 생각을 날라가게 해주었는데. 만약 지금 내가 자살을 하지 않고 있다면, 고작 실연때문에 죽은 여자가 되기 싫어서 악에 받쳐서 사는 것 뿐이다. 세상에 날 좋아해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한때 나를 미친듯이 좋아했다는 그도 지금 나를 미친듯이 싫어하고 있는데.

그는 한때,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 나에게, 그 말 뒤에는 '앞으로도 영원히'라는 말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그 뒷말을 뭉개버렸다. 어떻게 보면 그는 나를 단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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